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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저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잠시 교복이 사라졌을 때 고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교복이 생소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텀에 윗세대 교복은 일본교복의 냄새가 낫다면 아랫세대의 고등학교 교복은 개성을 중시하면서 학교의 특성대로 많은 스타일들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교복을 만드는 회사 중에 명품교복으로 말하던 SK그룹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SK그룹이 교복회사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요? 같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SK의 성장 비결 3가지
SK그룹의 자산 총액은 291조 원으로, 삼성(484조 원)을 잇는 국내 재계 2위입니다. 특히 재무구조가 탄탄하기로 유명합니다. 한 마디로 돈이 많다는 것인데 이유는 그룹의 캐시카우에 있습니다. 캐시카우란 현금을 창출하는 사업을 뜻하는데 SK그룹의 캐시카우는 정유, 통신, 반도체 사업입니다. 공통점은 바로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재라는 것입니다.
살아가려면 누구나 에너지와 통신망,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차에 기름을 넣어야 하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기가 안 좋아지거나, 심지어 전쟁이 나 안 쓸 수 없는 필수재입니다.
SK는 큰돈을 버는 캐시카우를 어떻게 3개씩이나 확보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탁월한 쇼핑 능력입니다.
2. 섬유에서 석유로? 한국석유공사 인수
섬유회사로서 입지를 다진 선경직물은 석유사업에 뛰어듭니다. 석유는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 섬유 생산에 꼭 필요한 원재료기 때문입니다. 당시 최종현 SK회장은 석유 사업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1973년과 1979년 석유파동이 터지며 우리나라에 석유 공급이 끊길 거란 우려가 커졌는데, 최 회장이 사우디 인사들을 설득해 석유를 받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 기회가 찾아옵니다. 정부가 국영 에너지 기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 미영화를 추진한 것입니다. 필수재인 석유 기업을 판다고 하니 여러 기업이 눈독을 들였던 것입니다. SK는 원유 공급 능력과 사우디와의 관계를 인정받아 인수에 성공했고, 이를 통해 재계 10위권에서 5위권으로 점프했습니다. 당시 SK가 수백 배 큰 유공을 인수한 걸 두고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때 인수한 유공은 SK주식회사와 SK에너지를 거쳐 지금의 SK이노베이션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3. 에너지를 먹으니 다음은 통신
선경은 1990년대 이동통신이라는 더 큰 목표에 도전합니다. 휴대폰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동통신 사업이 급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동통신 사업은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시장이 커지자 정부는 제2 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합니다.
SK는 사업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며 사업권을 반납하게 됩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최종현 회장이 사돈지간이란 점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SK는 포기하지 않았고 1996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고, 1999년엔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된 신세기통신까지 인수합니다. 단숨에 이동통신 1위 사업자가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SK텔레콤은 아직도 여전히 1위 이동통신 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4. 재계 2위 도약의 밑거름, SK하이닉스 인수
SK는 2012년 무려 3조 4천억 원을 주고 반도체 기업 하이닉스를 인수합니다. 정유와 통신 사업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현금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이닉스는 SK그룹이 재계 2위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때 파산위기에 놓였던 하이닉스가 글로벌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SK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며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첨단 산업으로 더 많은 캐시카우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커지기 위해서는 하던 일을 잘 키우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도 중요하지만,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정 동력을 발굴하는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h)도 중요합니다. SK는 적절한 시점에 좋은 기업을 인수하면서 비유기적인 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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