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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6일 영국의 소더비 경매장. 한 작품이 낙찰됩니다. 예상가격을 넘은 14만 2천 파운드. 한화 약 15억 원에 낙찰됩니다. 그리고, 바로 경고음과 함께 그림은 분쇄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3년 뒤인 2021년 원 가격의 20배가 넘는 300억 원에 낙찰됩니다. 분쇄가 된 상태로 말입니다. 해당 작품명은 '풍선과 소녀'. 이 에피소드는 미술을 몰라도 아실 만큼 상당히 유명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의 화가,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Banksy)'를 알아보려 합니다.
얼굴 없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신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얼굴 없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래서 뱅크시의 정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합니다.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은 그라피티를 할 수 없다. 그 둘은 양립 불가능한 요소다'라고 말한 그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유에 대한 철학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뱅크시는 1990년대부터 영국의 브리스토를 중심으로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인 그라피티는 대부분이 타인 소유의 건물 벽면이나 길거리에 그리는데 그런 그라피티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뱅크시는 경찰들을 피해 빠르게 그릴 수 있는 스탠실 기법을 사용합니다. 스탠실 기법이란 종이에 그리고자 하는 모양의 구멍을 뚫어 보안을 만든 뒤에 그 위에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물감을 두드려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초보자도 도안만 있으면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뱅크시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35초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며 경찰이 그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아트 테러리스트
폭력과 테러에 대한 반대와 평화를 향한 기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①꽃다발을 던지는 남자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공습을 피해 도망치는 아이들의 사진을 인용하여 만든 ②네이팜, 그리고 앞서 설명했던 ③풍선과 소녀 이 그림은 뱅크시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벽 그라피티와 캔버스 둘 다 존재하고 2014년에는 시리아 반전 캠페인을 위해 시리아 소녀를 본 더 새롭게 그린 작품이 발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뱅크시의 작품은 반전, 탈권위, 평화주의 등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뱅크시는 2005년에 대담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 이름하여 도.둑.전.시. 작품 몰래 전시하고 튀어버리기. 연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몰래 전시하고 도망쳤는데 작품을 보면 ①소를 사냥하고 카트를 몰며 쇼핑을 하는 원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작품이었지만 관람객들은 며칠이 지나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세계의 박물관을 돌며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는데 특히 미국 자연사박물관에는 ②유리로 둘러싸인 미사일 딱정벌레를 전시했고 사람들은 이를 23일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는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관람객들을 비판하기 위한 일종의 행위 예술이라고 해석됩니다. 2018년 뱅크시는 ③풍선을 든 소녀를 분쇄하는 퍼포먼스를 하였습니다. 해당 퍼포먼스는 자본에 물든 미술시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행위 예술이었던 것입니다. 그림이 분쇄된 다음 날 뱅크시는 자신의 SNS에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여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라는 글을 게재하였고 분쇄기의 설치 과정과 예행연습이 담긴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에 업로드하여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원래 계획은 그림을 전부 파쇄하기로 하였으나 기기 결함으로 인해 반만 파쇄가 되어 이를 굉장히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파쇄된 이 그림은 '사랑은 쓰레기통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경매에 나와 20배 가까이 오른 1870만 파운드, 한화 약 30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자 했던 행위가 아이러니한 결과로 나왔습니다.
전쟁 폐허 속 위로와 희망을 그리다
뱅크시의 그래피티가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 나타났습니다. 이 작품들은 뱅크시가 직접 SNS에 사진과 영상으로 인증하여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 인증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포탄으로 파괴된 건물을 아슬아슬하게 딛고 있는 ①물구나무 선 체조 소녀, 포탄을 맞은 건물의 구멍 위로 ②리듬 체조를 하고 있는 선수, ③방독면을 쓴 채 소화기를 들고 다니는 여성, 대전차 장애물을 시소로 비유한 ④시소 타는 어린아이 그리고 ⑤고렌카 마을에 목욕하는 남자, 군용차량으로 보완되어 미사일 운반선을 연상시키는 외관의 ⑥양식화된 페니스,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닮아 풍자한 ⑦어른과 유도경기를 하는 어린이 등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호스토멜, 이르핀, 보로디안카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을 비판하는 총 7점의 그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조용한 모습들이 그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 1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였는데 이번 뱅크시의 유도경기하는 그림으로 발행을 했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예술로서 위로와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뱅크시에게 바란다
이처럼 그는 지금까지 불법과 예술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위태롭게 얼굴을 숨긴 채 세계 여러 곳에서 사회, 문화, 예술 등 현대사회 인간에 대한 비판적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이런 상상을 감히 해봅니다. 현재, 조용하지만은 않는 우리 한반도, 이 대한민국, 서울의 어느 빌딩, 아니면 휴전선 어디쯤에 뱅크시의 벽화가 출몰한다면 아마도 역대급의 최고작이 되지 않을까 장담합니다. 저의 작은 소망이지만 우리도 뱅크시의 작품을 갖고 싶다. 아마 이런 모습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