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6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은 자신만의 색과 이미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호불호가 있는 브랜드이나 남녀노소에 다 어울리는 브랜드도 흔치 않습니다. 이 브랜드는 보테가 베네타. 지금까지 자신만의 철학으로 역사를 쓰고 있는 보테가 베네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공방이란 뜻의 보테가 베네타, 1966년 문을 연 후로 수십 년간 명품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약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보테가 베네타만의 DNA는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 한눈에 보는 보테가 베네타 정리 ▶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 인트레치아토 기법 ▶ 브랜드를 리뉴얼한 다니엘 리 크리에이터 ▶ 평생 워런티를 보장하는 특별 행보 1...

알렉산더 맥퀸 - Alexander McQueen, 그의 풀네임은 리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입니다. 출생은 1969년 3월에 영국 런던 루이셤에서 태어나 2010년 2월, 40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살았던 패션계의 악동이며 레전드였습니다. 그가 패션계에 나타난 시기에 그의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옷에 대한 모독이다 VS 천재가 나타났다'라고 평을 했으나 결국 패션계에서는 그의 천재적 기질을 보고 그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젠 그의 이야기를 상세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산더 맥퀸은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작업으로 영국 패션계에서 부상하고,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창조한 디자이너입니다. 그의 작업은 자연, 예술, 문화, 사회 등 다양한 요소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세계적인 팬층..

그녀의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메종 샤넬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세계 패션 역사에, 특히 여성복과 실용성이라는 부분에 한 획을 그은 패션 디자이너이지만, '재판받지 않은 전범.'이 놀라운 별명 역시 그녀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과대평가 논란이나 나치스파이였다는 등의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는 등 인생자체가 너무도 아이러니한 대중에게 알려진 모습과는 실제로 간극의 크기가 너무도 큰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아니, 모를 수가 없는 브랜드 샤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샤넬은 수녀원을 나와 한 술집에서 가수 생활을 하며 재력가인 에띠엔 발상을 만나게 됩니다. 샤넬은 그와 함께..

패션 아이콘 코코 샤넬의 삶과 사랑, 그리고 패션!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가 가장 사랑하고 열광하는 명품 브랜드 샤넬(CHANEL). 그 중심에 전 세계 패션의 아이콘이자 현대 여성의 아이콘인 코코 샤넬이 있다. 샤넬이라는 브랜드는 물론이고 현대 패션의 역사에서도 그녀를 빼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패션계에서 샤넬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이제 코코 샤넬은 전설이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메간헤스 메간 헤스는 그림을 그릴 운명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한 메간은 그 일을 발판 삼아 세계 굴지의 여러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2008년 메간은 캔디 부시넬이 쓴 의 베스트셀러 《섹스 앤 더 시티》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다. 그 이후 그녀는 《베니티 페어》와 《타임》 등의 잡..

1932년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11932년 나는 10만 살이 될 것이다 - 중에서 - Good morning Mr. Paik! 굿모닝 미스터 백! 1960년대 초 독일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한국 출신 청년의 퍼포먼스 '동양의 문화 테러리스트'로 불렸던 미스터 백 피아노를 '치는 소리' 뿐 아니라 '부수는 소리' 자체가 '음악'이다 그가 진정 부수고자 했던 것은 고정관념 관습 "소음은 왜 음악이 될 수 없는가?" 늘 세상에 없는 예술을 꿈꾸던 그가 새롭게 주목한 자신만의 캔버스 TV 당시 대중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TV "기술은 왜 예술이 될 수 없는가?" 그는 회로를 조작해 화면이 왜곡됐거나 관객의 참여로 화면이 완성되는 실험적인 TV를 선보인다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당시 구하기조..

팝아트(POP-ART). 영국과 미국에서 주로 발달한 미술 영역 중 하나입니다. 팝아트는 대중문화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으로 적극 수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길거리, 음식점, 카페에서 작품들을 한 번쯤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이 작품들이 모두 한 사람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저는 알고 계실 거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해 볼 인물은 "앤디워홀(Andrew Warhola)"입니다. 팝아트의 시작, 그의 탄생 앤디 워홀은 1928년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관심을 보이던 워홀을 그의 어머니는 그 잠재력을 일찍이 깨닫고 그에게 카메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워홀은 카네기 멜론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

2018년 10월 6일 영국의 소더비 경매장. 한 작품이 낙찰됩니다. 예상가격을 넘은 14만 2천 파운드. 한화 약 15억 원에 낙찰됩니다. 그리고, 바로 경고음과 함께 그림은 분쇄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3년 뒤인 2021년 원 가격의 20배가 넘는 300억 원에 낙찰됩니다. 분쇄가 된 상태로 말입니다. 해당 작품명은 '풍선과 소녀'. 이 에피소드는 미술을 몰라도 아실 만큼 상당히 유명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의 화가,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Banksy)'를 알아보려 합니다. 얼굴 없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신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얼굴 없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래서 뱅크시의 정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합니다.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은 그라피티를 할 수 없다..

독일 바이엘사의 진통제 아스피린과 동갑이고, 코카콜라보다 11살 어리지만 켈로그의 시리얼보다 9살 위이고 유니레버사의 바셀린보다는 25살 어리며 최초 항생제 페니실린의 첫 발견보다는 31년 먼저 태어난 대한민국 최초소화제 활. 명. 수.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카피로도 유명한 - 올해로 126년이 되는 국내 최고령 브랜드로 현재까지도 건재함을 보이며 '대한민국도 있다!'로 소개해 보는 토종브랜드 "부채표 활명수"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활명수의 탄생 궁중선전관 노천 민병호 1890년대, 한양을 찾았던 한 외국인이 있습니다. 영국인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 그녀는 조선을 둘러보다 깜짝 놀랍니다. '조선사람들은 한 사람이 3, 4인분을 먹고, 4명이 앉으면 과일 20개~ 25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태극문양으로 공연을 한 장면을 본 외국인들은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Pepsi~~!!' 펩시가 올림픽을 후원하며 메인 스폰서라고 생각한 이들이 아주 많이 있었는데 펩시의 로고와 태극무늬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의 스폰서는 코카콜라였습니다. 아무튼, 항상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2위 자리에 머물며, 그들에게 항상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펩시에 대해 알아볼 생각입니다. 탄생 - 100년 전쟁의 서막 1886년, 페루의 코카잎, 사프리카의 콜라 열매, 카페인 등을 넣어 새로운 의약품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코카-콜라' 지금은 세계 최고의 음료 브랜드가 됐지만 처음에는 신경증 치료제라고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코카콜라가 탄생한 지 8년 ..

"미국에선 부자든 가난하든 모두 코카콜라를 마신다. 대통령도, 세기의 여배우도 우리와 똑같이 코카콜라를 마신다. 콜카콜라는 그저 똑같은 콜라일 뿐, 아무리 큰돈을 준다 해도 더 좋은 코카콜라를 살 수 없다. 왜냐면 모든 코카콜라는 동일하며 똑같이 좋기 때문이다 - 앤디워홀 1975, Andrew Warhola Jr. 음료시장을 개척하다 우리의 사랑, 코카콜라의 탄생 오늘은 미국 팝아트(Pop art)의 거장 앤디 워홀(Andrew Warhola)의 저서 중 한 구절로 시작해 보았습니다. 저서의 많은 구절 중 "코카콜라(Coca-Cola)"에 관한 부분을 인용한 이유는 바로 "코카콜라의 병 디자인"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 음료수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한 코카콜라는 1886년 탄생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