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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POP-ART). 영국과 미국에서 주로 발달한 미술 영역 중 하나입니다. 팝아트는 대중문화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으로 적극 수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길거리, 음식점, 카페에서 작품들을 한 번쯤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이 작품들이 모두 한 사람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저는 알고 계실 거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해 볼 인물은 "앤디워홀(Andrew Warhola)"입니다.
팝아트의 시작, 그의 탄생
앤디 워홀은 1928년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관심을 보이던 워홀을 그의 어머니는 그 잠재력을 일찍이 깨닫고 그에게 카메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워홀은 카네기 멜론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에서 예술과 디자인을 전공하였고, 1949년 졸업 후 그는 예술가로서 경력을 쌓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1950년대에 워홀은 상업 예술가로 일하면서 광고와 잡지삽화를 그려왔고, 그때부터 그는 상업 미술의 배경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켰고 대담하고 다채로운 이미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1950-1960년대, 팩토리
1950년대 후반에 워홀은 실크 스크린 인쇄를 실험하기 시작했고 다른 예술가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와 기술들을 사용하여 그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예술 장르인 '팝아트'가 그중 하나였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팝아트로 알려진 새로운 예술 운동이 등장했습니다. 팝아트는 광고, 만화, 소비재와 같은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팝 아티스트는 이러한 일상적인 이미지와 사물을 주제로 사용하여 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아갔습니다.
앤디 워홀의 가장 유명한 팝아트 작품 중 하나는 1962년에 제작된 캠벨수프캔 그림 시리즈입니다. 당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수프 캔의 여러 가지 맛을 단순하고 그래픽적인 스타일로 묘사한 이 그림은 대중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소재가 소재인 만큼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발전 중...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앤디 워홀은 계속 번창하였습니다. 뉴욕시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거장이 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의 갤러리와 박물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누렸으며, 그뿐 아니라 영화와 음악, 출판에 까지 그의 영향력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워홀의 말년에는 논란이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법정 소송 싸움에 말려들었고 그의 사생활은 언론의 먹잇감이 되어 선전지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앤디 워홀은 1987년 58세의 나이로 담낭 수술을 하던 도중 합병증으로 사망을 하게 됩니다. 그의 이른 사망에도 불구하고 예술계와 대중문화의 영향은 계속되고 있으며 앤디 워홀의 작품은 더욱더 많은 예술가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미술 말고도 음악과 패션과 같은 다양한 문화 예술 영역에서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는 거장 앤디 워홀. 독창적인 시각과 스타일로 예술계를 변화시킨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