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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psi
pepsi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태극문양으로 공연을 한 장면을 본 외국인들은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Pepsi~~!!' 펩시가 올림픽을 후원하며 메인 스폰서라고 생각한 이들이 아주 많이 있었는데 펩시의 로고와 태극무늬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의 스폰서는 코카콜라였습니다. 아무튼, 항상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2위 자리에 머물며, 그들에게 항상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펩시에 대해 알아볼 생각입니다.

탄생 - 100년 전쟁의 서막 

1886년, 페루의 코카잎, 사프리카의 콜라 열매, 카페인 등을 넣어 새로운 의약품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코카-콜라' 지금은 세계 최고의 음료 브랜드가 됐지만 처음에는 신경증 치료제라고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코카콜라가 탄생한 지 8년 뒤인 1894년 노스캐롤라이나 뉴번에서 또 다른 의약품이 만들어집니다.

약사 케일럽 브래덤(Caleb Bradham)와 그의 약국
약사 케일럽 브래덤(Caleb Bradham)와 그의 약국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 케일럽 브래덤(Caleb Bradham) 그는 물, 탄산, 설탕, 바닐라, 콜라콩 등의 재료로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드링크를 만드는데 자신의 이름을 따 '브레즈 드링크(Brad's Drink)'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기분 전환, 상쾌한, 소화를 돕는다"는 슬로건으로 약국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합니다.

펩시, pepsi

브레즈 드링크(Brad's Drink)가 어떻게 펩시(pepsi)가 됐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많습니다. 음료 이름을 바꾸기 위해 공모전을 했는데 병을 처음 딸 때 나는 소리들을 합쳐서 만들어진 "펩시"라는 이름이 최종 선정됐고 게다가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이 바로 한국 사람이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로고도 태극무늬가 되었다는데 실제로 병을 따는 소리가 '펩시~'로 들리는 것 같긴 합니다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브레즈 드링크가 펩시라는 이름으로 바뀐 건 1898년 사람의 위에 있는 소화 요소 '펩신'에서 이름을 따와서 '펩시콜라'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는데 펩시가 소화에 도움을 주는 음료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903년에는 약국 뒤편에 펩시 콜라 컴퍼니를 설립하고 펩시콜라의 상표 등록도 하며 정식 브랜드가 됩니다.

1차 세계대전

펩시는 당시 업계 1위, 코카콜라를 누르기 위해 값싼 음료 전략을 펼치며 매출을 늘려갔고, 공장을 25개나 세우며 미국 24개 주의 펩시를 판매할 만큼 성공적으로 운영을 해나가고 있었는데 1914년 7월 28일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쟁의 영향으로 설탕 값은 10배나 높게 치솟았는데 설탕은 펩시를 제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재료였고 브래덤은 설탕 값이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대량의 설탕을 사재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고 설탕 값이 폭락하면서 막대한 설탕 재고와 함께 브레뎀은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브래덤은 코카콜라의 펩시 인수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결국, 1923년 파산 신청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31년 로프트 캔디사의 찰스 커스에게 펩시가 넘어가게 됩니다.

니클, Nickle - 미국동전 5센트

찰스커스가 펩시를 인수할 당시 미국은 대공항으로 인해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코카콜라는 6온스 병에 담겨 5센트에 팔리고 있었는데 찰스코스는 쓰러져가는 펩시를 살리기 위해 12온스 병을 만들어 5센트에 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CM송을 활용한 라디오 광고로 대박이 납니다.

라디오 CM송-니클송악보
라디오 CM송-니클송악보

'니클에 비해 2배나 많다'는 내용의 이 CM송은 100만 장 이상 주크박스에 넣어져 플레이되는데 니클은 미국의 5센트짜리 동전을 의미하며 당시 5센트 음료에 비해 펩시는 2배나 양이 많다는 점을 잘 어필했고 순수입이 11배나 증가하며 펩시는 코카콜라의 뒤를 바짝 추격하게 됩니다.

태극무늬 로고

처음 사용했던 펩시콜라의 로고는 코카콜라와 비슷한 느낌의 빨간색 필기체 로고였습니다. 이후 로고가 더 잘 인식되도록 조금씩 변해가긴 했지만 1940년이 될 때까지는 로고 모양의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펩시는 미국에 대한 지지를 표하며 성조기의 기본 색상인 빨강, 파랑, 흰색을 이용하여 음료병을 디자인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빨강, 파랑, 흰색 이 세 가지 색상은 펩시의 상징적인 색이 되는데 1950년, 병뚜껑 모양의 로고라는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로고가 탄생합니다. 병뚜껑 톱니 모양의 원 가운데 기존 로고가 위치하고 위아래로 빨간색, 파란색 물결 모양.

Logo Illustrations
Logo Illustrations

1962년에는 기존의 '펩시콜라' 글자를 완전히 빼버리고 펩시라는 단어만 고딕체 스타일로 큼직하게 들어가게 됩니다. 1974년에 들어서는 톱니 느낌을 빼버리고 심플하고 분명한 느낌을 주기 위해 디자인을 최소화시킵니다. 그리고, 1991년 원형 안에 있던 펩시 단어가 밖으로 나오게 되고 빨강, 파랑, 물결 사이가 좁아지게 되는데 태극 문양과 상당히 비슷해집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로고 펩시 글로브는 2008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웃는 얼굴을 표현하는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펩시 챌린지와 펩시맨

펩시와 코카콜라, 어떤 것이 더 맛있을까? 1975년, 당시 마케팅부 책임자였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는 펩시와 코카콜라가 1대 1로 비교 시험을 했을 때 펩시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며 광고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52대 48로 펩시가 더 낫다'는 결론이 납니다. 펩시 챌린지 마케팅은 미국에서 대성공적이었고 1975년 20% 정도였던 점유율은 1980년 28%까지 치솟았습니다. 이후 펩시 챌린지는 국내에도 도입되어 TV 광고로 방영되었는데, 하지만 국내에서는 코카콜라가 워낙 압도적이어서인지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97년 한국에 불현듯 나타난 나름 슈퍼 히어로 펩시맨. 근육질 몸매의 펩시 마크가 그려진 은색 유니폼을 입고 눈, 코, 귀가 없으며 입만 있는 캐릭터.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쏴~~~~~~'를 외치며 펩시를 나눠줍니다.

pepsi man
pepsi man

펩시맨은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마스코트인데 설정상 나사에서 연구하던 수수께끼의 금속이 갑자기 자아를 갖게 되고 근처에서 펩시를 마시고 있던 연구원에게 다가가 마치 베놈처럼 결합하게 되면서 펩시맨이 탄생하게 됩니다. TV광고에서 펩시맨은 각 시리즈마다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마지막에 퇴장하면서 여기저기 다치게 되는데 펩시맨이 다친 부위와 펩시캔이 찌그러진 부위를 일치시키며 TV광고의 동기화를 시키는 유머로 광고가 대박을 터뜨립니다. 미국에서는 별 흥행하지 못했고 오히려 한국에서 대박이 나면서 매출이 30% 이상 올랐습니다.

현재 - 또 다른 길 

펩시 대 코카콜라, 코카콜라 대 펩시. 치열했던 100년간의 콜라 전쟁에서 패배한 펩시는 전략을 바꾸게 되는데 콜라 경쟁이 아닌 종합식음료 회사로 전향한 것입니다. 비만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할 무렵 건강 음료가 부각될 것이라고 판단한 펩시는 1998년 주스 제조업체인 트로피카나를 인수하고 2001년에는 게토레이를 보유한 케이커 오츠를 인수합니다. 예상은 적중했고 결국 펩시코는 매출에서 코카콜라 컴퍼니를 따라잡고 성공적으로 종합 식음료 회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펩시콜라 vs 코카콜라를 비교 광고
펩시콜라 vs 코카콜라를 비교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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