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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Schreyer
Peter Schreyer

너무나 존경하고 좋아하는 디자이너라 더 많은 그의 디자인 작업물을 소개하고 싶었으나, 스크롤의 압박에 소개하지 못한 점, 무척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를 통해 피터 슈라이어에 대표작과 그의 철학을 정리하고 찾아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15년을 함께 해주신 그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대한민국 자동차 디자인, K5 전과 후로  나뉜다 

삐-. 삐-. 삐-. 삐삐. 삐삐. 삐삐. 삐삐.
자동차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분명히 기억할 사운드. 혹시 기억하시나요? 모스부호 소리와 함께 하얀 배경을 조용히 가로지르는 이 차의 광고를 10여 년 전 처음 봤을 때 이질적인 느낌을 넘어 경외심까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광고의 주인공은 'Form the future'라는 카피라이트처럼 마치 미래에서 온 듯 한, 이전 국산차 디자인에서 볼 수 없었던 조형미가 일품인 기아의 1세대 'K5'입니다.

 

K5 TV광고,2010
K5 TV광고,2010

 

1세대 K5는 공개 당시 국내외를 막론하고 디자인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으며 국산차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수송 디자인 분야 최우수상을 받기도 한 레전드 모델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자동차 디자인은 이 K5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할 정도로 국산차 디자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모델이자 현재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초석이 되어준 'K5'.

 

디자이너, 아티스트, 탐험가 - 피터 슈라이어 

혹시, 누가 디자인했는지 아십니까? 이제는 여러 매스컴을 통해 익히 얼굴을 알린, 어쩌면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한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입니다. 오늘은 2006년 9월 기아에 영입된 후, 이제는 현대차그룹 디자인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피터 슈라이어의 대표 자동차 디자인과 그의 40년 디자이너 삶을 관통하는 다섯 가지 디자인 원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피터 슈라이어는 아우디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우디에서 그가 참여한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AUDI TT'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프리먼 토마스, 제이 메이스 등 잔뼈 굵은 디자이너와 함께 'AUDI TT'를 완성합니다.

 

AUDI TT,1988
AUDI TT,1988

 

특히, 양산화 작업에 큰 역할을 해냅니다. 이 모델은 아이코닉한 형태를 통해 아우디가 벤츠와 BMW의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프리미엄 시장의 동등한 경쟁자로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피터 슈라이어의 이름을 수면 위로 올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우디 티티는 바우하우스에 근거한 간결하고 절제된 조형미가 일품인 모델이며, 전체적으로 큰 선을 긋고 각 컴포넌츠들이 유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지게 맞물리는 예리하면서도 조화로운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 감각은 아우디 티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여러 모델에 입혀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폭스바겐에서도 그의 감각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오늘날 출시되는 골프 스타일링의 표본이 되는 4세대 골프는 폭스바겐 스타일링의 정수를 보여주는 모델로 그는 이전 3세대 디자인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한편, 지금 골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두터운 C필러를 도드라지게 강조합니다.

 

Volkswagen Golf Mk4, 1997
Volkswagen Golf Mk4,1997

 

특히, 뒷문과 미등 사이의 커트라인은 4세대 모델에 처음 등장한 디테일로서 최신 모델인 8세대 모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골프만의 고유 디자인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순한 형태와 구조에 대한 피터 슈라이어의 고찰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디자인입니다. 이외에도 아우디와 폭스바겐에서 그는 다양한 모델들의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디자인 철학을 관통하는 문장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직선의 단순함'입니다. 피터 슈라이어의 직선의 단순함이란 단순히 차에 직선이 많이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닌 직선처럼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을 의미합니다.

 

기아, 피터 슈라이어를 만나다 

재정의

피터 슈라이어는 2006년 기아로 이직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브랜드와 기아자동차를 상징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어떤 것이든 일관된 흐름을 확립하는 일이 디자이너로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위해 강력하고 인상적인 요소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금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Tiger Nose'입니다.

 

Tiger Nose+KEE
Tiger Nose+KEE

 

'Tiger Nose 즉, 호랑이 코' 디자인은 그릴 오프닝을 재정의하는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합니다. 그릴의 위쪽, 아래쪽을 안쪽으로 오목하게 파낸 모양으로 기아만의 차별화된 디자인 요소를 만드는 것이며, 피터 슈라이어는 이내 기아에서 자신의 첫 작업물인 콘셉트카 'KEE'를 공개합니다. 이 모델은 '타이거 노즈'를 바탕으로 피터 슈라이어의 비전을 선언하는 모델이었고 그의 디자인이 한국의 자동차 업계를 뒤집어 놓을 것이라는 선포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직선의 단순함이라는 원칙과 타이거 노즈라는 고유의 스타일링을 바탕으로 정립된 기아의 패밀리 룩은 빠르게 전 모델에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소울, 쏘렌토, K7, K5, 스포티지 등 다양한 모델들이 그의 손을 거치며 시장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동양의 어느 브랜드에 그쳤던 기아를 단숨에 유럽과 미국에서 주목할 만한 브랜드로 만들어 냈습니다.

 

수많은 작업물

많은 분이 피터 슈라이어 하면 기아와의 인연만을 기억해 그의 손길이 닿은 제네시스와 현대자동차의 모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모델에 피터 슈라이어가 직접 관여했습니다. 먼저, 2014년에 공개된 현대 '인트라도' 콘셉트입니다. 이 모델은 당시 급성장하고 있는 크로스 오버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존재감을 확립하기 위해 제작되었고, 그는 디자인의 영감을 항공기를 통해 자주 떠올리곤 했습니다. 이 모델의 이름인 '인트라도'도 양력을 발생시키는 비행기 날개 아랫면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합니다.

 

Conceptcar-Intrado
Conceptcar-Intrado

 

그래서, 자동차의 디자인을 보면 여기저기에서 비행기라는 그의 영감원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그의 초기작인 파사트에서 비행기 내부의 핵심 사양을 자동차 디자인에 통합시켰다면 인트라도에서는 더 나아가 비행기의 착륙 장치인 랜딩기어의 바퀴에서 주된 영감을 받았습니다. 또한, 후면부 펜더의 지느러미 모양도 항공기라는 주제에 맞게 공기 역학적 기능을 살리면서도 과시적인 느낌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시각적인 형태는 현대의 플루이딕 스컬프쳐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제네시스를 독립 럭셔리 브랜드로 만드는 것은 현대자동차가 프리미엄 자동차 부문에 진입한 이후 10년째 계속해 온 전진과 도전의 정점을 이룬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콘셉트카를 통해 세상은 '제네시스'라는 브랜드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2016년에 공개된 제네시스 뉴욕 콘셉트카입니다. 피터 슈라이어는 이 모델을 통해 '동적인 우아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Conceptcar-GENESIS
Conceptcar-GENESIS

 

이는 궁수가 활을 쏠 때의 자세와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강력함과 우아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네시스만의 디자인 철학이며, 미국에서 공개된 이 콘셉트카는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고 제네시스가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콘셉트카는 'G70'으로 양산됩니다. 뉴욕 콘셉트카의 다부진 스탠스와 비율을 발전시킨 이 모델은 당시 모터쇼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로 등극했는데, 가장 주목받은 요소는 바로 '크레스트 그릴'이었습니다.

 

GENESIS G70
GENESIS G70

 

그리고, 이 크레스트 그릴은 제네시스의 모든 차종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새로운 상징이 됐었습니다. 또한, 이 모델은 동적인 우아함이라는 제네시스의 철학을 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데, G70은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자태에 차체가 바퀴에 얹혀있는 모양새로 제네시스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표현함과 동시에, 향후 제네시스 브랜드의 중추를 형성하는 개념과 형태가 어떤 것인지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15년은 한국 자동차의 행운의 15년이었다 

피터 슈라이어의 15년은 현대, 기아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가지게 된 15년이기도 합니다. 가파른 기술의 발전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피터 슈라이어를 필두로 한 글로벌 디자인 경쟁력을 갖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40년 디자이너 인생을 관통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이렇게 말합니다.


1. 비례와 균형을 통해 통일된 전체의 디자인을 대하는 법
2. 명확한 주제를 찾아내 고수하는 것
3. 건축적인 시각으로 자동차 실내를 바라보는 것
4.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
5. 개성을 추구하는 것, 결국 아날로그이며 인간적 요소에 기반한 디자인하는 것


이 다섯 가지 원칙이 적용된 그의 디자인들을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도로 위에서 즐겁고 반갑게 마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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